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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교육평가센터 작성일2024-12-09 조회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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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도자기 등이 길거리에 무질서하게 쌓여 있습니다. 주변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값비싸 보이는 세간살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50명 가까운 인파입니다. 경매처럼 앞에 있는 장삿꾼이 물건을 파는 모습입니다. 어느 쇠락한 권세가의 집 물건이라네요. 숙종의 장인 민유중(려양부원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 죽동궁이 쇠락의 끝을 맞이했습니다. 가문의 상속자인 민정식이 집안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결국 상해로 몸을 피한 뒤, 집은 몇 달째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이틀 전부터 죽동궁의 창고에 쌓여 있던 세간들이 하나둘 큰 길가로 끌려 나와 경매로 처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죽동궁은 결국 젓가락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가문 디케이디앤아이 의 영광이 몰락한 모습을 보며 회한과 비통함을 느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1924년 12월 5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 팔려가는 죽동궁 세간 – 싸구려! 막 파는 구려!/ 1924년 12월 5일자 동아일보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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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죽동궁 앞에서 몰려든 흥정꾼들/ 1924년 12월 5일자 동아일보 2면


무슨 사연인지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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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막심한 죽동궁(竹洞宮)의 말로(末路)





돈 때가 묻은 가가지 세 작업진행 간 한길가에서 싸구려 신세로





◇ 한창 세도가 당당하던 숙종대왕의 장인 려양부원군 민유중 공의 가통도 분명치 못한 상속자 민정식 대에 이르러 난마같은 집안은 나 대학원 국가장학금 날이 쇠하여 들어가다가 수십만의 재산을 가지고도 맘대로 하지를 못하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다가 필경에는 몸을 피하야 상해(上海)로 달아나서 그나마 죽동궁(竹東宮)이라던 대문조차 영구하다 더 버리게 된 지가 이래 몇 달이 되었던 바 재작일부터 그 집안 창고에 깊이 쌓여 있던 역대 손손히 내려오던 구하기 드문 가장 집물이며 주인이 친히 쓰던 탁자와 상이며 안주인이 입던 명주 비단 옷가지를 산산히 끄어내여 죽동궁 앞 넒은 마당에서 『십원이오 십원 십원 십원 오십전이오 자』소리를 치며 경매를 하게 되엿는데 부러진 상다리 깨어진 솥두껑, 동 녹 쓴 침상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회구의 감에 느끼게 하였으며 이끼 돋은 기와장에 『동민회』(同民會) 라고 쓴 흰 간판이 갈린 죽동궁은 옛날 듣고 지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비창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로써 말썽 많던 죽동궁은 젓가락하나 남지 않고 망해 버린다더라.













● 화무십일홍…세간살이의 입장에서 본 권력의 쇠락
사진이 실린 다음 날인 1924년 12월 6일자 동아일보는 가구와 접시 등 물건들의 입장에서 권력의 쇠락을 바라보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기사라고 하긴 어색한 형식이지만 100년 전 신문이 권력의 무상함을 특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입니다.





〈죽동궁 민정식 씨의 몰락과 세간의 하소연 -몰락한 죽동궁의 주인〉





“열흘 붉은 꽃 없고 십 년 세도 없다”는 속담이 죽동궁 민정식 씨의 집에 딱 들어맞는다. 그는 아내 이봉완 씨에게 휘둘리고 처가와 삼촌들, 그리고 채권자들에 시달리다 결국 죽동궁을 떠나 상하이로 몸을 피했다. 현재 그는 낯선 땅에서 눈물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죽동궁처럼 웅장했던 집은 이미 민영휘 씨의 소유로 넘어갔고, 남은 재산 역시 팔려나가고 있다. 집 안의 세간살이들마저 일본인 변호사에게 맡겨져 길거리 고물상에서 팔리는 신세가 되었다.





◇세간들의 하소연


민정식 씨 집안에서 대대로 사용되던 세간들은 이제 주인을 잃고 낯선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물건들은 자신들이 겪는 처지를 이렇게 한탄한다.





◇배가 고픈 두 주전자 이야기


과거 민정식 집안의 식량을 책임졌던 두 주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집 대청 구석에서 수백 명의 식구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 덕분에 한때 배고픔을 몰랐지만, 요즘은 우리 안이 텅 비어 배가 고픕니다. 결국 경매장으로 끌려가서 깨지고 망가져 이제 쓸모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꽃 같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접시


“나는 선대감의 특별 주문으로 영국에서 건너온 최고급 접시였습니다. 산해진미를 담으며 연회와 식탁을 빛내던 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깨지고 금이 가 병신이 되었습니다. 조선까지 와서 이렇게 비참해질 줄은 몰랐습니다.”





◇비단옷이 담겼던 장농의 한탄


“내 몸엔 대방마님이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옷들이 차곡차곡 쌓였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옷들은 하나둘 팔려 나갔고, 끝내 쥐들이 내 몸을 갉아먹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지금은 경매장 구석에서 나뒹굴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옛 영광을 잃은 침대


“내 몸 위에는 한때 주인 부부가 편안히 잠들었고, 마마님들도 자주 쉬어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금이 벗겨지고 똥칠까지 당해 비참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민정식 씨의 몰락과 함께 세간살이들도 주인을 잃고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한때 영광을 누리던 물건들이 몰락한 집안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후일담
신문사 사진기자를 하면서 패배자를 카메라로 찍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렇지만 찍는다고 그 사진을 승리자보다 크게 쓰거나 많이 쓰지는 않습니다. 가령 박빙의 승부 끝에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자의 얼굴은 크게 쓰지만 패배하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그다지 크게 쓰지 않습니다. 넘지 말아야할 선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에 크게 사진이 실린다면 그 패배자에 대한 신문의 평가가 아주 박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1924년 12월 5일 동아일보 2면에 실린 두 장의 사진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사진입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지탄받은 인물의 말로를 보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로 최근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계엄’의 후폭풍에 대해 느낀 점 몇 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날 새벽 지방 출장을 위해 집에서 쉬고 있던 중 우연히 YTN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막바지에 들린 ‘계엄’이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심정으로 TV와 유튜브의 채널을 옮겨가며 현장을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계엄은 선언되었지만 기자들과 시민들의 카메라는 계속 돌아갔고 시민들에게 실시간으로 현장 화면이 중계되었습니다.
‘중과부적’이라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탄식은 사진기자인 저에게는 이미지 전쟁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변화된 세상에 대한 이해와 준비없이 막연히 통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1980년대 운동권이었던 지금의 586들의 ‘국회 담넘기’ 이미지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퍼지면서 저항과 연대가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시작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첨단 장비를 지급받은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가는 이미지는 보수층 사이에서도 지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 세력의 계엄을 경험했던 우리 사회는 인터넷이라는 기술 발전을 계기로 세상에 소식을 알릴 수 있는 채널을 다양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게다가 카메라에 익숙하고 카메라에 찍혀 역사에 남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는 젊은 군인들에게도 현장의 실시간 중계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지 않았습니다.
5일 저녁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학생총회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대통령의 후배인 대학생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은 엄청나게 절차와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총회가 열리는 학생회관 앞 계단광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바일 신분증으로 일일이 확인을 해야 했고, 타학교 학생이나 일반 시민들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100% 서울대 학생들의 모임이고 그들의 결의라는 명분을 갖추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덕분에 5시에 행사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고 취재를 나섰던 저는 행사가 시작되는 8시 30분까지 신분 확인하는 절차를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2024년 12월 5일 학생총회를 준비하는 서울대 학생들. 모바일 학생측을 확임해 입장시키느라 3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추운 날씨에도 학생들은 줄을 선 채 기다렸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본 행사가 시작되었을 때도 과거와 다른 집회 모습이었습니다. 일사분란한 8자 구호는 없었습니다. 손을 들어 동시에 하늘로 향하는, 사진기자에게는 필수적인 ‘결정적 순간’도 별로 없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데모 모습과는 현저하게 달랐습니다. 짧은 시간에 거리를 장악하고 시민들에게 세를 보여줘야만했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조근조근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는 학생들의 연설이 이어졌습니다. 사진기자로서는 상당히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신문에 쓸 한 장의 사진을 찍는데 총 4시간이 걸렸습니다.



속도보다는 올바름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변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맥락이나 설명 없이 3일 밤 TV에서 들었던, 계엄군의 ‘처단’이라는 단어는 참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왜’가 빠진 공권력의 공격 앞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40년 전과 같은 ‘상명하복’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회로 우리 사회가 성숙했고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은 100년 전 어느 세도가의 몰락을 명확하게 기록해 놓은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과 내일 신문은 어떤 사진으로 권력을 기록하게 될지 그리고 그 기록들이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두려우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느껴지시나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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